너와 나의 세상 이야기/나의 이야기

편견(偏見)의 뒤

alps 2010. 12. 18. 20:29

 

偏見의 뒤

                                 - 베를린에서-


어느 날 자료를 찾기 위해서 네 살 난 아들과 베를린의 북쪽 끝 동네를 갔다가 돌아가는데 갑자기 등 뒤에서 누가

“한국분이십니까?”

라는 소리에 돌아다보니 어떤 한국가정이 우리들을 바라보며 손짓하고 있었다. 집 앞을 지나치는 한국 사람을 만나기가 극히 드문 일이라며 무척이나 반가워하면서 시간이 있으면 잠시 들려서 차나 한잔 하고 가라고 해서 어차피 집에 가서 공부할 수도 없는 토요일이라, 아이와 잠시 들렸다.

그러나 이야기가 길어지다 보니 차 한 잔이 저녁까지 대접을 받게 되고 말았다.

그런데 그 날 그 두 부부는 열 살 난 아들에게 컴퓨터를 사주려고 백화점에 가기로 아들과 약속한 날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 아들이 갖고 싶다는 컴퓨터는 유감스럽게도 공부에 도움이 크게 되지 않는 게임용이다. 그래서 이왕 사 주시려면 한글도 쓸 수가 있고 텍스트도 쓸 수 있는 일반용 컴퓨터를 사시라고 그 집 사정을 잘 알지도 못하면서 주제넘게 권해 보았다.

아이가 공부에 취미를 잃어 인문계 고등학교(Gymnasium)에 못 갈 것 같다며 크게 근심스런 말을 들은 뒤라 난 그분들의 아들에 대한 사랑이 지나치게 물질로 표현된 것 같음을 막 느끼던 때였다. 더구나 형의 방에 따로 설치된 텔레비전을 한참 재미있게 보다가 일어나기 싫어하는 나의 아들을 데리고 나오며 방안을 보니 알파벳이나 수학을 읽히기 위한 작은 컴퓨터와 게임보이, 닌텐도, 라디오 등 온갖 전자제품들이 다 있었다.

저 아이가 이제 11살이 되어 곧 고등학교를 가야하는데 내가 보기에는 어렵다. 왜냐하면 공부에 관한 것보다는 노는 것에 대한 관심이 더 높아 사 달라는 컴퓨터고 또 그것을 사주기로 결정을 하신 부모님들이다. 그렇다고 사 주시지 말라고 내가 강하게 권고 할 수가 없었다.

집으로 돌아가려는 우리에게 자기의 아들이 놀던 장난감이라며 한 보따리 자동차들을 준다. 그런데 그의 아빠가

„자동차에 너무 먼지가 많이 묻어있어 죄송합니다.„

라고 하시며 묻지도 않은 말씀을 하신다. 물론 물으려든 것을 참고 있었던 것이기도 했다.

이렇게 서독에 거주하시는 분들이 일반적으로 다 그렇듯이 이 두 분들도 맞벌이를 하시는 분들이다. 때문에 일찍 일어나서 직장을 가야하는 두 분들에게는 이런 아들이 짐이 될 수밖에 없다. 캄캄한 새벽일을 나가며 잠자는 어린 것의 머리맡에 새로운 자동차를 하나 사다 놓고 빵을 발라 머리맡에 두고 일을 가시려면 마음이 그렇게 아팠다고 한다. 그럼 그 어린 것이 일어나서 그 새 자동차를 갖고 놀다 혼자서 탁아소엘 간다고 한다. 그렇게 매일 새 자동차를 사 주셨을 테니 당연히 이렇게 자동차가 많을 수밖에...

그 설명을 들으며 난 눈시울이 뜨거워 졌다.

온종일 몸은 직장에 있으면서도

‘어린 것이 탁아소에는 잘 갔을까?

학교는 잘 갔을까?...’

온갖 염려 속에 일하고 돌아오면서는 다시금 새로운 자동차를 사들고 와야 하는 그 분들의 심정 나도 나 이외에는 돌볼 사람이 없는 자식을 키우는 사람이라 충분히 이해가 갔기 때문이다.

'잠자는 어린 아이를 두고 집을 나서는 그런 부모의 마음이 오죽이나 아팠을까!'

라고 생각하니 저 아이가 공부에 재미를 잃은 것은 결국 그 두 분만의 잘못만이 아니라, 어쩌면 우리 모두의 잘못이기도 한 것이다.

우리나라가 그렇게 가난하지 않았었다면 굳이 먼 이 타국 땅에 간호원으로, 광부로 올 필요도 없었을 테고 그렇게 왔더라도 한국에 돌아가 먹고 살기가 그렇게 힘들지 않으면 당장이라도 돌아가겠건만 막상 돌아가면 집 한 채 없는 빈 몸으로 어디 일자리 또 하나 얻기가 쉬운가!

때문에 그 분들이 말하듯이 몸은 독일에 사나 마음은 항상 고국에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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