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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과 집착

사랑과 집착누군가를 아끼는 마음이 깊어지면 자연스레 시선이 머물고,어느 정도의 관심과 애틋한 집착은 자연스레 생겨납니다.그것이 온전히 상대를 향한 배려일 때는 괜찮지만,그 마음에 내 욕심이 과도하게 섞이기 시작하면,상대를 옭아매는 집착으로 변질됩니다.사랑은 그 사람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품어주고,스스로 날아오를 수 있게 뒤에서 바람이 되어주는 일입니다.부족함을 탓하기보다 곁에 머물러주는 것만으로도고맙다는 마음이 담겨 있습니다.하지만 집착에 사로잡히면 마음이 먼저 조급해져상대에게 숨 쉴 틈조차 주지 못합니다.사랑이라는 그럴듯한 이름을 붙여도,결국엔 내 안의 불안을 달래려고 상대를 내 틀에억지로 끼워 맞추는 일일 뿐이지요.끊임없이 확인하고 내 뜻대로 쥐락펴락하려는 손길은결국 상대를 지치고 힘들게 만듭니다.내..

저절로 푸른 산이 되지 않습니다

저절로 푸른 산이 되지 않습니다기차를 타고 도심을 조금만 벗어나면창밖으로 보이는 푸른 산과 겹겹이 서 있는 나무들은대한민국의 아름다운 풍경이 되어줍니다.하지만 불과 반세기 전만 해도 대한민국의 산들은붉은 속살을 드러낸 민둥산이었습니다.전쟁의 상흔과 함께 혹독한 겨울 추위를 버티려잔가지까지 긁어모아 때야 했던 가난 탓에,비만 오면 토사가 쏟아지고 봄에 심은 묘목이겨울이면 다시 베어지는 악순환이되풀이됐습니다.이 굴레를 끊어낸 건 1970년 초 시작된치산녹화((治山綠化) 사업이었습니다.연탄이 보급되고 땔감림을 따로 가꿔 겨울나기부터 해결하자,비로소 산을 향하던 도끼날이 멎고 본격적인조림이 가능해졌습니다.식목일이면 너나없이 산에 올라 아이들은 송충이를 잡고어른들은 메마른 비탈에 나무를 심었습니다.10년이 걸릴 ..

추석 나들이

올해도 추석날 김유정마을을 다시 찾았다. 작년과 다른 점이 있다면 오늘은 어느 특이한(?) 종교집단에 10년이나 붙들려 추석날도 찾지 않던 아들이 드디어 그 교회를 벗어나 추석에 찾아왔기에 함께 했다는게 다를뿐이다 잘 있었냐?또 찾아 왔으니 인사라도 해야지? 멀리 뒤로 금병산이 보이는 이 김유정 마을은 소설의 이야기 처럼 초가집으로 꾸미고 이 마을에 사는 사람들도 새로운 문화 보다는 옛스런 모습으로 살아가기에 그런 때에 살던 내가 가장 쉽게 접근 할수가 있어서 좋다고향 원주 내가 살던 동네는 논과 발들 그리고 과수원들을 갈아 엎어 이젠 도시에서 가장 비싼 땅값을 가진 로데오 거리로 변해 체육관에 터미날에 시청이 들어서서 어린 시절 헤매던 산야는 단 한평도 없이 도시화 되어 버렸으니 추억이란 것을 떠올릴 ..

행주산성의 기적 뒤에 숨겨진 힘

행주산성의 기적 뒤에 숨겨진 힘한강 하류에 있는 덕양산은 해발 125미터로 높이는 낮지만,한강과 맞닿은 남쪽과 서쪽 사면은 가파른 절벽과급경사를 이루고 있습니다.1593년 초봄, 이곳은 나라의 숨통을 지켜낸가장 치열한 전장이었습니다.밀려드는 3만의 왜군 정예병을 마주한 건정예 관군과 의병, 그리고 승병을 합쳐 수천 명 남짓의조선군이었습니다.숫자로만 보면 이미 끝난 싸움이었지만,권율 장군은 이 작은 언덕의 지세를 꿰뚫어보고 있었습니다.뒤편으로는 한강을 등져 배수진이자 보급선으로 삼고,토성 위에 이중 목책을 둘렀습니다.여기에 변이중의 화차와 승자총통, 비격진천뢰 같은조선의 화약 무기를 치밀하게 배치했습니다.음력 2월 12일 새벽,왜군의 맹렬한 파상공세가 이어졌습니다.조선군과 처영 대사가 이끈 승병들은불 뿜는..

영하 50도를 견디는 게르

영하 50도를 견디는 게르끝없이 펼쳐진 몽골의 대초원.겨울이면 영하 50도까지 떨어지는 그 혹독한 초원에서,과거 몽골 사람들은 '게르'라는 둥근 천막에 기대어겨울을 보내야 했습니다.게르의 모습은 매서운 바람을 막아줄 것처럼 보이지만,사실 게르의 내부만 보면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화로에 불을 지펴도 공기 위쪽만 잠시 데워질 뿐,바닥은 차갑고 2~3센티미터 남짓한 양털 펠트 벽으로는한파를 다 막아낼 수 없었습니다.혹독한 겨울을 이겨 낼 수 있었던 이유는게르 그 자체가 아니라, 수백 년간 초원에서 터득했던그들만의 지혜였습니다.게르의 둥근 구조는 거센 바람을 정면으로 맞서려 하지 않고둥글게 만들어 자연스럽게 스쳐서 가도록 하였으며가축의 배설물을 말려 다시 난방 연료로 사용하고유일한 창문인 천장의 작은 창을 통해..

'소통'이 '고통'이 되지 않도록

'소통'이 '고통'이 되지 않도록충청도 사람들은 '가셨습니다'를 '갔슈','괜찮습니다'를 '됐슈'로 줄여서말하곤 합니다.어느 날 충청도의 시골 이발소에한 미국인 남자가 들어왔는데 이발소 주인아저씨는그 남자에게 인사했습니다."왔슈?"충청도 말로 '오셔서 반갑습니다'라는 뜻이었는데미국인 남자는 이발소 주인아저씨의 말을'What see you?(당신은 무엇을 보고 있습니까?)'로착각해 들었습니다.미국인 남자는 비록 조동사 'do'가 빠지긴 했지만시골 아저씨 치고 그 정도면 제법 훌륭한영어 실력이라고 생각했습니다.남자의 앞에는 이발소의 큰 거울이 보였습니다.그는 문장이 길어지면 주인아저씨가 알아듣지 못할까 싶어딱 한 마디로만 대답했습니다."mirror(거울)"그런데 이게 어찌 된 일입니까.남자가 의자에 앉자마자..

거울 앞의 나에게 묻는 나이

거울 앞의 나에게 묻는 나이나이가 든다는 건 시선의 초점이서서히 옮겨가는 일과 많이 비슷합니다.눈앞의 이익이나 조급함에 매달리던 젊은 날을 지나고 나면,어느덧 걸어온 길을 돌아보고 남은 길을 내다보는여유가 생기기도 합니다.공자는 '논어' '위정'편에서나이에 따른 삶의 의미를 다음과 같이 일러줍니다.마흔에는 세상 유혹에 흔들리지 않는 중심을 세우는 '불혹(不惑)'쉰에는 하늘의 뜻과 삶의 몫을 깨닫는 '지천명(知天命)'예순에는 어떤 이야기도 너그럽게 품어내는 '이순(耳順)',그리고 일흔에는 마음 가는 대로 해도 어긋남이 없는'종심(從心)'에 이른다고요.흔히 남을 보며 "저 사람은 언제쯤 철이 들까?" 생각하는데실은 그 물음이야말로 거울 앞의 나를 향해야 맞습니다.나이를 먹게 됨에 따라 몸이 점점 쇠약해지는 ..

콩 심은 데 콩 나고 팥 심은 데 팥 난다

콩 심은 데 콩 나고 팥 심은 데 팥 난다창밖을 노랗게 물들이는 가을 들판을 바라보면,나도 모르게 위로받곤 합니다.씨앗 하나가 뿌리를 내리고 열매를 맺기까지,자연은 단 한 번도 순리를 벗어나려 하지 않으며결과를 재촉하지도 않습니다.'콩 심은 데 콩 나고 팥 심은 데 팥 난다'라는 말처럼,흙은 무엇을 묻었느냐에 따라 정직하게제 모습을 드러낼 뿐 엉뚱한 열매를맺는 법이 없습니다.우리의 삶도 이와 참 많이 닮았습니다.너무나 당연한 순리인 줄 알면서도,우리는 작은 정성을 심어두고 싹이 트지 않을까 불안해하거나,콩을 심어놓고는 팥이 열리기만을 바라며자신을 괴롭히기도 합니다.하지만 세상의 모든 인연과삶의 결실은 놀라울 만큼 정직하기만 합니다.삶은 우리가 보낸 다정함과 따뜻한 말을 잊지 않으며뿌린 만큼 거두고, 정성..

농부는 들판의 끝을 보지 않는다

농부는 들판의 끝을 보지 않는다우리 주변에서는 앞으로 일에 대해서미리 염려하며 걱정하는 사람을 볼 수 있는데그런 사람들은 주변에 자주 이렇게탄식합니다."산더미처럼 쌓인 이 일을 언제 다하지?이제 나는 죽었다. 어휴..."그러나 미리 염려하며 탄식하다 보면일 때문이 아니라 염려 때문에먼저 지칩니다.프랑스 속담에 이런 말이 있습니다.'풀을 베는 농부는 들판의 끝을 보지 않는다.'풀을 베려는 농부가 들판의 끝을 보며"저 많은 들의 풀을 언제 다 베지?"라는푸념만 하다 보면 결국 의욕도 잃고일을 끝내지 못한다는 것입니다.망상, 집착, 한계, 게으름, 불신.인생에 하나 도움 되지 않을 것 같은이 다섯 가지를 '염려'의 얼굴이라고도서 '걱정 버리기 연습'의저자는 말합니다.우리 마음대로, 계획대로통제할 수 없는 것이..

사랑받기에 늦은 나이란 없습니다

사랑받기에 늦은 나이란 없습니다어느 유기견 보호소에 열두 살 노견 한 마리가 있었습니다.세상에 홀로 남겨진 채, 언젠가 자신을 다시 사랑해 줄누군가를 하염없이 기다리면서요.나이가 많고 볼품없어진 외모 때문이었을까요,보호소 앞을 지나치는 사람들은 그저 힐끔 쳐다볼 뿐,발길을 멈추지 않았습니다.그렇게 시간은 계속 지났습니다.녀석에게 허락된, 안락사 예정 시각까지의 삶은얼마 남지 않았습니다.바로 그 순간, 한 할머니가 보호소 안으로 들어섰습니다.할머니는 떨리는 손으로 테이블 위의 서류를한 글자씩 쓰기 시작했습니다.그 모습을 지켜보던 직원들은할머니가 반려견과의 마지막 작별을 앞두고안락사 동의서를 작성하는 것이라 여겼습니다.보호소에선 너무나 흔히 보아온슬픈 장면이었으니까요.하지만 할머니가 떨리는 손으로 써 내려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