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와 나의 세상 이야기/나의 이야기

부질없는 짓?

alps 2011. 1. 12. 10:29

어느 날 보라매공원을 걷다가 호숫가에서 꽃나무 한그루를 주었다.

이름도 모르는 나무였으나 아마 공원 관리 아줌마들이 주위에 심으려고 나르다 떨어진 모양이다. 뿌리가 아직 바싹 말라 있지는 않은 것을 보니 떨어뜨린 지 얼마 안 된 것 같다.

난 무심결에 그것을 주워들었다. 그래서 조심스레 들고 와서 컵에 물을 가득 담아 담가 두었다.

한 주일이 지나기도 전에 푸른 잎이 되살아나 아주 생기가 있어 보여서 마음이 매우 흐뭇했다.

강의가 없던 어느 오후에 난 그런 꽃나무를 물에만 담가 둘 수가 없어서 화분 하나와 흙을 사서 옮겨 심었다. 식목일에 나무를 심던 경험을 되살려 뿌리가 곧게 벋을 수 있도록 조심스레 뿌리사이에 검을 흙을 넣고는 살며시 다독거려 쓰러지지 않도록 한 다음 물을 흠뻑 뿌려 주고는 베란다의 다른 화분들 사이에 두었다.

그리고 며칠 후에 화분에 물을 주려고 자세히 보니 그렇게 싱싱하던 잎들이 왠지 힘이 없어 보였다. 그래서 물이 부족해서인가 싶어 물을 듬뿍 주고는 잎을 한 장 한 장 물에 닦으며 정성을 드렸지만 날이 갈수록 잎이 말라간다.

분갈이가 힘들다는 것은 작년에도 경험했던 터라 내가 너무 일찍 화분에 옮겨 싶었나 싶어 다시 뽑아서 물에 좀 더 담가 둘까도 생각했지만 아직 꽃은 죽지 않고 있고 아래 잎들은 시들고 있지만 위쪽은 그런대로 생기가 있는 것 같아

‘어차피 한번을 겪어야 할 시련이다.’

라고 생각하며 그냥 두기로 했다.

하지만 다른 꽃들이 환하게 핀 사이에 풀 죽은 아이 마냥 고개 숙인 잎들이 여간 마음이 쓰이는 것이 아니다.

난 이 묘목을 잘 살려서 작년의 실수를 만회하려던 참이었다. 작년 이맘때에 어떤 분이 꽃이 잘 핀 장미 화분을 하나 주시면서

“이 화분의 장미를 기르듯이 학생들을 잘 가르치십시오!”

라고 선물을 주셨다.

헌데 어쩌다 그 장미가 꽃을 완전히 피우기도 전에 그만 시들어 죽고 말았다.

우리 누구나 바쁘게 살듯이 나도 새벽 5시에 깨어나 저녁 11시에 잠이 들도록 바삐움직이다보니 그런 장미꽃에 정성을 쏟을 시간이 없었던 것이다.

 

허나 막상 시든 장미 꽂을 바라보는 몹시도 마음이 무거웠었다. 그런 나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어느 날 아내가 그나마 그 시든 장미를 화분 채 버리고 말았다. 하지만 마음에 늘 그분의 모습이 떠올라 죄 지은 기분이었다.

내가 가르치는 학생들에게 이렇게 죽어 가는 생명력 없는 무언가를 가르치는 것은 아닌 지 반성도 되었다.

긴 15년의 유학에서 배워 온 학문을 가르치기에 우리나라는 무언가 교육구조가 많이 개선 되어야했다. 적어도 한 학기에 관리 할 학생들이 300명이 넘다 보니 그 중에 단 10%는커녕 단 10명 학생의 이름조차 외우지 못할 때가 많다. 그러다 보니 나의 강의는 사랑도 지혜도 들지 않는 지나치게 이론 적인 강의만 하고 있기에 강의를 끝내고 돌아오는 발걸음이 늘 무거웠다.

“한 그루의 나무를 잘 기르지 못하는 내가 어찌 300명의 학생들을 잘 가르칠 수 있을 것인가!” 

하는 자책감이다.

어쨌든 저 죽어가는 나무를 어떻게든 살려야만 한다. 그 길거리에 떨어진 작은 묘목이지만 당시 생명이 살아 있던 귀한 나무이기 때문이다. 이 한 나무를 살리지 못하는 사람이 어찌 수백 그루를 살릴 수가 있는가?

며칠 두고 봐서 더 시들어 가면 뽑아서 다시 물에 담가 두었다 좀더 잔뿌리가 많이 생긴 후에나 옮겨 심어야겠다.

 

그래서 어떻게든 저 한 나무부터 잘 살려 볼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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