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와 나의 세상 이야기/나의 이야기

일상의 일에 회의를 느끼게 될때 ~

alps 2021. 1. 10. 22:05

아들이 좋아하는 사금치 한 접시를 만들기 위해서 우선 시금치를 데쳐야 한다.

너무 많이 데쳐도 흐물거리고 비타민도 소실 되니

아주 적당히

그리고 푸른 색깔이 밭에서 방금 뽑아온 시금치 마냥 푸른 기가 살아 있게 하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다

그래서 잘 데쳐진 시금치라면 일단계는 성공한 것이다

그 다음엔 적당히 소금과 깨소금, 참기름 그리고 다져진 마늘과 파를 썰어 버무리면 되지만 소금이나 참기름을 저울에 달아 하는 것이 아니다 보니 실수하면 짜게 될수도 있다. 그럼 시금치를 좀 더 삶아 보태면 되겟지만 사 온 시금치가 이게 다인데 또 사러가기 싫다면 우선 싱겁게 부치면서 소금을 뿌려야 실수를 줄여야 할 것이다

그래서 무쳐놓은 시금치의 맛을 보니 원하는 만큼은 아니지만 '이만하면 되었다!'

라고 생각하고 반찬 통에 담아보면 딱 한끼분이다.

그것을 냉장고에 넣고나서 그걸 삶고 무친 그릇을 설겆이하고 돌아서면 몇십분이 훌쩍 지나간다.

 

'내가 그래도 명문데 수석 입학하고 수석 졸업한 엘리트이며 그래서 석사도 좋은 성적으로 졸업해서 유망주라고 교수님들이 등 떠다밀며 온 유학을 와서 박사과정의 바쁜 일정 속에 읽어야 할 책도 무지 많은데 아이와 놀아주어야 하고 또 청소하고 빨래하고 시금치를? ~~~ 내가 이 단순한 소꿉장난같은 일상에 그 귀한 시간들을 쏟아 붓는게 잘하는 짓인가? '

 

이게 박사를 마치지 못하고 교통사고로 일찍암치 저 세상에 간 아내의 생각이었다면 ~~

나와의 결혼이란 그렇게 낭만적이고 행복한 것은 아니었을 것이다

결국 일가친척이 없는 타국땅에 남자인 내가 그 일을 떠맡아 하면서 문득 죽은 아내가 나를 바라다 보면 무어라 할까?

 

'그 고생해서 박사를 마치고 학생들을 가르치는 사람이 그냥 시장에서 반찬 사다 먹지 그것 한 접시 무치는 동안에 후세를 위해서 책이라도 한 줄 더 쓰시지 않으시고? ' 라고 할까?

 

그렇다면 그녀가 죽은 지 벌써 33년이나 되는데 참 무지하게 많이 헛되게 살은 것이다.

경제가 넉넉지 않아 파출부는 어림도 없으니 내가 청소와 빨래 그리고 밥을 하면서 논문을 써야하고 또 독일 회사에 출근해서 네 시간 일도 하다보니 저 엄금엄금 기는 어린 아들이 무얼 생각하지를 살필 겨를이 없다보니 남들은 한 살이면 걷느다는데 아들은 4살에야 기저귀도 떼고 걸음마를 했으니 말이다.

 

하지만

아내가 내 곁을 말없이 떠난후 이 모든 일을 하며 겨우겨우 살아 오면서 이런 단순한 일상생활이 그렇게 쓰레기처럼 무의미한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다.

변명일까?

이 시간에 좀 더 책을 쓰고 연구했더라면 학계에서는 좀 더 인정을 받았겠지만 그게 진정한 행복일까?

귀국해보니 우리나라 이혼율이 무지 높다고 한다

즉 시금치 무치는 일이 쓸모없이 젊음을 낭비하는 보잘 것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주부로서 남편으로 세상을 살려면 삶이 너무 보잘 것 없어질 것이기 때문에 결혼을 꺼리게 되고 결혼을 해도 이런 단순한 일상생활이 자기의 발전에 장애물이 되다보니 이혼하는 것은 아닐까?

 

그런데 곰곰히 생각하면 그 별것없는 일상행활이 우리 인간의 긴 역사를 이끌어 온 매개체이다.

어느 훌륭한 학자가 어느 훌륭한 정치가가 몇 만년 인간의 역사를 이끌어 온 것이 아니라 그저 이름도 없이 죽은 우리의 선조가 '어찌 생각하면 쓸모없이 단조로운 이런 일상생활을 묵묵히 하면서 자녀를 키운 덕에 인간의 역사는 아직 끊기지 않고 지금껏 이어 왔고 앞으로 이어갈 것이다'.

따라서 시금치 한 접시 무치는 것은 내가 박사 학위를 한 만큼이나 값어치가 있다는 말이다.

내가 무친 시금치를 맛있게 먹는 아들은 나의 석사 박사학위의 내용도 모르지만 시금치 맛은 안다.

그래야 우리 일상생활이 보람이 있을 것이고 시원찮게 버는 남편이 사랑스러워져야 닦고 돌아서면 다시 지저분한 방바닥을 또 닦는 것이 자기도 남편도 그 아래 자녀들도 행복할 수가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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