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와 나의 세상 이야기/나의 이야기

나의 모습

alps 2018. 8. 21. 09:48

독일의 오월, 유월은 역시 날씨가 좋다.

그런 계절에 생일을 맞는 아들을 보며 왠지 이제는 즐거운 맛보다는 삶의 무게를 느낀다. 어제 6살이 막 된 녀석과 이곳저곳 저를 축하해준다는 곳에 돌아다니다 밤늦게야 돌아오면서 또 한해 키웠구나!’ 하는 긴 한숨을 쉬었다.

 

그런데 내 손을 잡고 걷던 영민이가 갑자기 뚱딴지 같이

아빠(Papa), 나 빨랑 커서 아빠가 될 꺼야

하며 까만 눈에 희망이 가득 차 있어서

그래 빨리 아빠가 되어서 무얼 할래?”

라고 되물으니까,

그럼 방문도 혼자 잠그고, 텔레비전도 보고, 컴퓨터도 만지고, 화분에 물도 주고, 밥도 하고, 빨래도 하고.”

그냥 두면 얼마를 갈지 몰라 말을 멈추게 했는데 이것이 녀석이 보는 아빠의 모습인데 오히려 녀석에게는 무척 재미있게 여겨지나 보다. 그런 아이와 사니 그나마 나의 시원찮은 모습을 잊을 수가 있어 좋다.

지금도 이렇게 글을 쓰는 동안에 녀석은 먹으라는 밥은 안 먹고 주스에 손가락을 담가서는 거기에 묻은 것을 쪽쪽 빨아먹으며 장난을 하고 있다. 빨리 먹으라고 독촉을 하지 않으면 아마 하루가 지나도 다 마시지를 않을 것이다.

목욕탕을 들어가도 한 시간이요, 옷을 입으라고 해도 한 시간씩 걸리지만 유일하게 빠른 것은 화장실에 가면 단 일분을 안 넘긴다. 아빠가 얼마나 시간에 쪼들리는지를 알 턱이 없는 저런 어린것과 사니 하루가 언제 넘어가는지를 모르겠다.

-1995년 6월 2일 베를린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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