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이스라엘인들의 기원
1. 전승; 야곱의 아들들로 시작되는 12지파들의 전통은 역사 이전 시대에는 한번도 존재한 적이 없었다. 즉 창세기 안에 있는 족장의사화들은 자연과학적으로는 또는 역사학적으로 증명하기에는 근거가 희박하다. 다시말해서 창세기1-11장의 이야기들은 역사를 말해주는 역사책이 아니라 사화들 혹은 설화들이다.
2. 유래; 이스라엘이 북부 메소포타미아에 있던 하란의 지경에서 출발하였다고 하는 사실은 후기에 발견된 마리문서들로 통해서 연결지을 수가 있다. 주전 19-18세기에 하란이란 도시가 번창했으며 창 24,10절에 따른 리브가(레벡카; Rebekka)의 조상 나홀(나훌; Nahur)의 명칭도 이 마리문서에 나오기 때문이다. 하지만 처음부터 이스라엘이라고 지칭된 기록이 없기에 신 26,5절이 ‘유리하는 아람인’이라고 하듯이 우선 아람인으로서 유래를 찾는다해도 통일된 계보는 말하기 어렵고 좀 더 분명한 것은 모세의 지휘아래 이집트에서 나왔던 지파들은 비아람인의 계열이었으며 팔레스틴에 들어와서야 아람계 이스라엘인들과 결합되었다는 사실이다.
3. 유목민으로서의 초기 이스라엘인들
낙타-사막인 문화권(ein Kamel-Beduinentum); 낙타로 짐을 끄거나 탈수 있는 유목민이라면 낙타대신 나귀가 그 역할을 수행한 나귀 유목민 문화권(Esel-Nomadentum)이 있는데 12세기에 이미 가축으로 알려진 낙타를 이스라엘이 알지 못하였기에 역사의 연속성에 문제가 있다.
-고대 중동 유목민의 특징은 유랑하는 목자들이다. 목초지는 겨울비(10월~4월)가 내리는 동안 목초지나 스텝광야지만 여름의 건기로 스텝의 식물이 말라죽기 시작하면 문명지대의 거주지역으로 이동하였다가 겨울비가 오게되면 다시 스텝으로 돌아가는 유랑민이다. 따라서 씨족들이 모여 야영을 하면서 공동생활을 하였기에 씨족의 연대가 강해 질 수 밖에 없었다. 그래서 불문률의 관습법으로 씨족의 민사법적 책임이 주어졌다. 즉 피의 보복행위는 가족을 지키는 명예로운 행위가 되며 족보가 중요하게 된다. 하지만 개인 소유욕은 농촌문화와 달리 약하거나 관대하여 손님접대나 보호의무가 강하여 내것을 나누어 주는 전통이였다(창 19장 롯과 24,24 리브가의 이야기, 삿 19장 기브아 사람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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