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움의 길/고대 오리엔트

I. 이스러엘인들의 기원

alps 2017. 2. 1. 10:19

I. 이스라엘인들의 기원

1. 전승; 야곱의 아들들로 시작되는 12지파들의 전통은 역사 이전 시대에는 한번도 존재한 적이 없었다. 즉 창세기 안에 있는 족장의사화들은 자연과학적으로는 또는 역사학적으로 증명하기에는 근거가 희박하다. 다시말해서 창세기1-11장의 이야기들은 역사를 말해주는 역사책이 아니라 사화들 혹은 설화들이다.

2. 유래; 이스라엘이 북부 메소포타미아에 있던 하란의 지경에서 출발하였다고 하는 사실은 후기에 발견된 마리문서들로 통해서 연결지을 수가 있다. 주전 19-18세기에 하란이란 도시가 번창했으며 창 24,10절에 따른 리브가(레벡카; Rebekka)의 조상 나홀(나훌; Nahur)의 명칭도 이 마리문서에 나오기 때문이다.   하지만 처음부터 이스라엘이라고 지칭된 기록이 없기에 신 26,5절이 유리하는 아람인이라고 하듯이 우선 아람인으로서 유래를 찾는다해도 통일된 계보는 말하기 어렵고 좀 더 분명한 것은 모세의 지휘아래 이집트에서 나왔던 지파들은 비아람인의 계열이었으며 팔레스틴에 들어와서야 아람계 이스라엘인들과 결합되었다는 사실이다.

3. 유목민으로서의 초기 이스라엘인들

낙타-사막인 문화권(ein Kamel-Beduinentum); 낙타로 짐을 끄거나 탈수 있는 유목민이라면 낙타대신 나귀가 그 역할을 수행한 나귀 유목민 문화권(Esel-Nomadentum)이 있는데 12세기에 이미 가축으로 알려진 낙타를 이스라엘이 알지 못하였기에 역사의 연속성에 문제가 있다.

-고대 중동 유목민의 특징은 유랑하는 목자들이다. 목초지는 겨울비(10~4)가 내리는 동안 목초지나 스텝광야지만 여름의 건기로 스텝의 식물이 말라죽기 시작하면 문명지대의 거주지역으로 이동하였다가 겨울비가 오게되면 다시 스텝으로 돌아가는 유랑민이다. 따라서 씨족들이 모여 야영을 하면서 공동생활을 하였기에 씨족의 연대가 강해 질 수 밖에 없었다. 그래서 불문률의 관습법으로 씨족의 민사법적 책임이 주어졌다. 즉 피의 보복행위는 가족을 지키는 명예로운 행위가 되며 족보가 중요하게 된다. 하지만 개인 소유욕은 농촌문화와 달리 약하거나 관대하여 손님접대나 보호의무가 강하여 내것을 나누어 주는 전통이였다( 19장 롯과 24,24 리브가의 이야기, 19장 기브아 사람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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