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문회서 드러난 위기관리 시스템 부재·오작동 콘트롤타워
여러 조선사와 해운사가 이 지경까지 망가진 책임을 누가져야 할 지를 놓고 지난 8~9일 이틀에 걸쳐 조선·해운산업 구조조정 청문회를 열었지만 결론은 실망 뿐이었다.
이번 청문회의 주요 관심은 지난해 4조2000억원을 긴급 수혈받은 뒤 올들어 5조원 규모의 분식회계가 드러난 대우조선해양과 물류대란을 촉발시킨 한진해운 법정관리에 집중됐다 . 하지만 홍기택 전 산업은행 회장과 최경환 전 부총리 등 핵심 증인들이 빠진데다 자료 제출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일부 의원들은 답변을 듣기도 전에 자기 말만 계속하는 질타 일변도의 구태의연한 태도를 보이면서 핵심을 전혀 파헤치지 못했다는 비난을 받고 있다.
전문가들은 이번 청문회를 계기로 산업은행·수출입은행 등 정책금융기관에 대한 과감한 개혁과 관리감독 강화를 비롯한 재정비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 대우조선 전 감사실장 "정치권·청와대 영향에 내부통제 붕괴"
신대식 전 대우조선 감사실장은 김성식 국민의당 의원으로부터 "돌아보면 지금 대우조선이 망가진 내부적 원인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내부통제시스템이 무너져 관리감독해야 하는 산업은행도 제대로 하지 못할 여건이 형성됐다"며 정부를 비난했다.
신 전 실장은 내부통제가 무너지도록 영향을 미친 주체로 정치권, 청와대 등을 들었다.
신 전 실장은 2008년 9월 퇴직 이후 대우조선의 부실이 심화된 과정에 대해 "관리감독과 견제의 기능이 없어져서 경영자는 거리낌 없이 모든 경영을 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지난 2008년 9월 퇴직한 그는 "당시 산업은행을 통해 '청와대에서 세 사람을 내려보내려 하니 대우조선에 들어와 있는 외부인사 세 사람이 나가야 한다'고 들었다"면서 "그들이 들 어온 것이 2008년 10월 1일이었고, 나와 다른 두 명이 나가라고 한 날짜도 똑같았다"고 답했다.
◇ 핵심 증인 없는 자리에서 상대방 비판하는 고성 난무 '혼란 가중'
핵심 증인인 홍기택 전 산업은행 회장은 이번 청문회에 끝내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최경환 전 경제부총리와 로비와 방만의 핵심이라는 의혹을 받고 있는 남상태 전 대우조선 사 장도 불참했다. 산업은행-대우조선 커넥션 연결고리 격인 홍보대행사 대표 박수환씨도 출석을 거부했다.
당초 더불어민주당, 국민의당, 정의당 세 야당은 청문회를 연기해서 준비를 더 철저히 갖추고, 날짜도 늘리기로 합의했었다. 그러나 국민의당이 말을 바꾸면서 이 노력은 물거품이 됐다.
지나치게 짧은 기간도 문제였지만, 홍 전 회장, 최 전 부총리 등 당시의 상황을 잘 아는 핵심 증인이 빠진 게 더 큰 문제였다. 이 때문에 질의응답도 핵심을 비껴나가 일각에서는 맹탕 청문회라는 비판까지 제기됐다.
최 전 부총리는 증인 출석을 거부한 뒤 자신의 페이스북에 "정략적인 정부 때리기라는 포퓰리즘적인 정치문화가 관료들의 유능함을 감추어버리게 만든 게 문제"라는 글을 올려 빈축을 사기도 했다.
더민주 박용진 의원은 최 전 부총리에 대해 “비겁하다”고 날을 세웠고, 정의당 심상정 의원은 “주요 증인을 빼는데 전력을 다하는 집권여당을 보며 한심하기 그지없었다”고 꼬집었다.
여야는 상대방 공격에만 열을 올렸다. 여러 차례 증인 출석과 자료 제출을 요구하고, 마이크가 꺼진 후에도 상대방을 비판하는 등 고성이 오가 혼란만 가중시켰다 .
◇ "분식회계 알고도 지원했다" 야당의원들 발끈 vs 정부 비호나선 여당
더민주 박광온 의원은 “정부가 분식회계를 알고도 대우조선에 지원한 것”이라고 질타했다. 참고인으로 나선 김기식 전 의원 역시 “당시 정부는 분식회계 정황을 이미 파악하고 있었다”고 말했다.
더민주 민병두 의원은 “대우조선에 4조2000억원 지원이 합리적이라는 정부의 의견을 믿기 힘들다”며 “자세한 자료를 내놓으라”고 요구했고, 정의당 심상정 의원도 “당시 대우 조선의 부족자금이 2조4000억원이었는데, 왜 4조2000억원이나 지원했는지 이해하기 힘들다”고 지적했다.
국민의당 김성식 의원은 “한진해운 법정관리로 인한 물류대란에서 기재부, 금융위, 산업자원부 등 간에 어떤 체계적인 협력도 보이지 않았다”며 “정부는 콘트롤타워가 아니라 ' 오작동타워'”라고 꼬집었다.
반면 여당 의원들은 정부측 비호에 열을 올렸다.
새누리당 박명재 의원은 유 부총리에게 “서별관회의는 합법 아니냐?”, “정책 조율 과정이지 결정 과정이 아니지 않느냐?”, “모든 내용을 공개해야 된다고 보나?” 등 유도성 질문을 했다.
◇ 청문회는 정부 입장 항변하는 자리?
청문회에 증인으로 나선 유일호 경제부총리, 임종룡 금융위원장 등 정부 측 인사들은 하나같이 “합리적인 결정”이라고 항변했다.
임종룡 위원장은 “당시 대우조선에 4조2000억원을 지원하지 않았다면, 파산을 면치 못해 대규모 실직, 지역경제 악영향, 국책은행 부실화 등 더 큰 파장을 불러일으켰을 것”이라고 말했다. 임 위원장은 이어 “분식회계로 오염된 재무제표가 아니라 삼정회계법인이 새롭게 실사한 자료를 토대로 대우조선 회생을 위해 필요한 액수를 지원한 것”이라며 지원의 정당성을 강조했다.
유 부총리도 “대우조선 지원 당시 분식회계의 위험성은 인지하고 있었지만, 국가경제를 위해 살려야 한다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이들은 ‘한진해운 사태’에 대해 “한진해운과 현대상선 모두를 살리고 싶었다”며 “다만 구조조정 원칙을 지키기 위해 한진해운의 법정관리는 어쩔 수 없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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