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와 나의 세상 이야기 2134

까마귀가 날자 배 떨어진다

까마귀가 날자 배 떨어진다 미술학원 수업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온 초등학생 아들이 일찍 퇴근한 저를 보더니 물었습니다. "아빠 '오비이락'이 뭐예요?" "왜? 그걸 어디에서 들었는데?" "미술학원에서 '까마귀가 날자 배 떨어진다'를 주제로 그림을 그리라고 했는데 사자성어로 그게 '오비이락(烏飛梨落)'이라고 선생님이 말했어요." 저는 아들이 뜻도 제대로 모르면서 어떤 그림을 그렸을지 궁금했습니다. "그래? 아들 어떻게 그렸니?" "까마귀와 바다 위의 배를 그렸어요. 그리고 (자기 배를 두드리며) 이 배를 그렸어요." 전 아들의 그림에 한참 웃고 난 뒤 아들에게 그 뜻을 설명해 줬습니다. 아들은 난감하고 속상한 표정을 짓더니 미술학원 선생님께 말씀드려서 다시 그려야겠다고 말했습니다. 며칠 뒤 아들에게 다시 그..

꽃섬 하화도

오늘의 일정은 먼 여수 앞바다 꽃섬이라 불리는 하화도다. 4시간 30분을 달려 도착한 백야도 는 아직 동이 트기에는 이른 새벽 04시다 함산한 대원들이 아무도 따라 나서지 않아 나홀로 백야도 백호산을 올라보니 제2봉이란다. 봉우리 세개 중에 제일 높은 모양이다 하산하며 내려다 본 남해 앞바다는 부지런한 사람들의 자취들이 멀리서도 엿보인다 우리는 08시 첫 배로 제도와 상사를 거쳐 하화도에 도착한다. 바로 가면 15분이면 갈 곳을 돌다보니 50분이나 걸린단다 ㅎㅎ 그래서 9시 경에 도착한 하화도 제1,2전망대롤 오르니 이슬비에 머금은 노오란 유채화들이 반긴다. 싱싱한 초원이 알맞은 봄비에 젖어 푸르름이 아름답다. 지나가는 내게 물세례를 주는 유채화들이 장난기 어린 물장난 덕에 옷이 흠뻑 젖어 가지만 ㅎㅎㅎ..

포스베리 플롭

포스베리 플롭 '포스베리 플롭(Fosbury Flop)'은 가장 널리 사용되고 있는 높이뛰기 종목의 기술로 가슴과 배를 하늘로 향하여 바를 넘는다고 하여 '배면 뛰기'라고도 합니다. 이 기술이 선보이기 전까지는 높이뛰기 방법으로는 제자리 뛰기, 가위 뛰기, 엎드려 뛰기 등 대부분 앞으로 뛰어넘는 기술만을 사용했습니다. 그러다 어느 날, '딕 포스베리라'는 선수가 다이빙의 재주넘기 장면을 보다 아이디어를 얻었고 '앞으로 넘지 말고 뒤로 넘어 보자'는 새로운 방법을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그 결과 포스베리는 1968년 멕시코 올림픽에서 이 기술을 선보였고, 2.24m로 올림픽 신기록과 함께 금메달을 목에 걸었습니다. 이후로 다른 선수들도 포스베리가 선보인 기술을 익혀 대회에서 사용하기 시작한 것이 지금까지 이..

얼굴은 마음의 거울이다

얼굴은 마음의 거울이다 미국의 서부 개척 시대에 사람들은 행운을 꿈꾸며 금광을 찾아다녔습니다. 어느 날 광산을 파헤치던 한 부류의 사람들은 천신만고 끝에 금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삽과 곡괭이는 닳고, 먹을 것도 떨어져서 다시 마을로 돌아가게 되었습니다. 금광을 발견했던 사람들은 기쁨도 잠시, 금광의 존재를 들킬 것을 우려해 그 사실을 누구에게도 발설하지 않기로 약속했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다시 광산으로 돌아갈 때, 수백 명의 사람들이 곡괭이를 들고 따라오면서 큰 소리로 말했습니다. "당신들은 금을 발견했나 보군요! 저희도 그곳으로 데려가 주면 안 되겠소?" 금광을 발견한 사람 중에 그 누구도 금광에 관해서 이야기한 사람이 없었기에 놀라서 말했습니다. "아니, 금이라니요? 무엇을 보고 하시는 말..

갑옷과 투구

갑옷과 투구 고대 트로이의 총사령관인 헥토르는 그리스의 전사 아킬레우스와 대결하기 전 아내 안드로마케를 만나러 갔습니다. 안드로마케는 성안에서 적과 싸우라고 하지만 헥토르는 아버지의 의무와 도시를 지키는 책임자로서 성 밖으로 나가서 정정당당히 싸우기를 결심했습니다. 이때 헥토르는 자기 아들을 안고자 했으나 투구와 갑옷으로 무장되어 있었기에 아들은 겁먹은 얼굴로 유모에게 안겨 떨어지지 않았습니다. 헥토르는 자신이 입고 있던 갑옷과 투구가 어린 아들을 놀라게 했다는 걸 알았습니다. 갑옷과 투구는 전쟁에서 자신을 지켜주는 중요한 것이지만, 아들과 아버지의 관계에서는 서로 가까워지는데 가로막는 장애물이었던 것입니다. 헥토르는 갑옷과 투구를 벗자 아들은 그제야 환하게 웃으며 아버지에게 안겼습니다. 그 시간만큼은 ..

내 편이 되어주는 친구

내 편이 되어주는 친구 가난한 환경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남자가 있었습니다. 모든 것이 부족했고 힘들었던 그에게 친구들은 항상 도움을 주었고, 먹을 것이 생기면 늘 나눠주곤 했습니다. 시간이 흘러 그는 다른 지역으로 이사를 하였고, 성인이 된 후 시작한 사업이 성공을 거두어 큰 부자가 되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어린 시절 살다 떠나온 고향 생각이 간절했던 그는 고향으로 내려갔습니다. 그리고 친하게 지냈던 친구들을 모두 불러 잔치를 준비했습니다. 친구들은 모두 기쁜 마음으로 초대에 응했고, 좋은 자리를 마련해 준 그 친구에게 고마움의 의미로 정성껏 선물을 준비해 왔습니다. 그런데 한 친구가 늦게 도착했는데 그는 허름한 차림에 한 손에는 선물로 술병을 가지고 왔습니다. "미안들 하네, 내가 좀 늦었군."..

좋은 집의 조건

좋은 집의 조건 중국 남북조시대 송계아라는 고위 관리가 정년퇴직을 대비해 자신이 살 집을 보러 다녔는데 그는 지인들이 추천한 몇 곳을 다녀도 마음에 들지 않았습니다. 그러다 드디어 마음에 드는 집을 발견하였고 송계아는 집 가격보다 훨씬 큰돈을 주고 선뜻 샀습니다. 이 집은 바로 여승진의 이웃집이었습니다. 여승진은 성실하고 겸손한 사람으로 덕망이 높았습니다. 그렇게 송계아가 이사 오고 인사하기 위해 방문한 여승진은 물었습니다. "왜 그렇게 많은 금액을 주고 이곳으로 이사하셨습니까?" "저는 평소 여선생님의 훌륭한 인품을 존경해서 선생님 가까이에서 살아보는 것이 소원이었습니다. 그래서 기존 집값은 집값으로 지불하였고, 나머지 추가되는 금액은 선생님과 이웃이 되기 위한 값으로 지불한 것입니다." 좋은 집의 조..

진해 장복산의 진달래와 벚꽃

날씨 탓에 축제 기간이 지나서야 만개한 진해 벚꽃을 보기 위해 세번이나 가서 결국은 활짝 옷는 꽃들을 만나고 왔다 가깝지도 않은 4시간 반을 달려가야 도착하는 먼 곳 진해를 열흘 안에 세번이나 찾아 온 것이다 ㅎㅎ 오라는 것도 아닌데 많이들도 오셨다 ㅎㅎ 두 번은 당일에 한 번은 무박으로 찾아간 여좌천 밤벚꽃이다 ㅎㅎ 여명이 찾아든 장복산 근처에는 진달래가 반기고 ㅎㅎ 맑은 하늘은 아니지만 진달래 위로 떠오르는 태양을 바라보면서 ~~ 진달래의 색깔이 새벽을 가르는 시원한 바람에 한결 싱싱해 보인다 가까이 닥아가서 인사를 하고 ㅎㅎ 지나오면서 다시 한 컷을 ~~ 이른 아침 진해와 남해 바다 위로 배도 한 두척 떠가고 ~~ 덕주봉 가는 길은 이정표도 사라지고 대신 울타리를 두르고 입산을 통제 한단다 전에 두..

더 좋은 자리

더 좋은 자리 사랑하는 연인이 노을을 보기 위해 작은 동산에 올라 쉴 자리를 찾았습니다. 동산에 올라와 보니 가장 가까운 곳에 자리가 있었고 그들은 그곳에 앉았습니다. 주위를 둘러보던 중 위쪽에 있는 자리가 더 좋아 보였고 "위로 가면 노을이 더 잘 보일 거야!"라며 위쪽으로 자리를 옮겼습니다. 그곳에 앉은 후 옆을 보니 훨씬 좋아 보였고 "여긴 나무가 노을을 가리니 옆으로 가면 더 잘 보일 거야!"라며 다시 옆자리로 옮겨 앉았습니다. 하지만 이번엔 햇빛에 눈이 부셔 건너편으로 옮겼고 그곳에 만족하려던 찰나, 아래쪽에 아주 좋은 자리 하나가 보였습니다. 나무가 노을을 가리지도 않고 눈이 부시지도 않는 곳이었습니다. 두 사람은 다시 아래쪽으로 옮겼는데 자세히 보니 이 자리는 두 사람이 처음 앉았던 자리였습..

백비(白碑)가 보여주는 청렴한 삶

백비(白碑)가 보여주는 청렴한 삶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는 속담처럼 사람은 세상에 남기는 명예를 매우 중요시합니다. 그런데 전남 장성 소나무 숲 한 묘지 앞을 지키는 낯선 비석이 있는데 이름뿐만 아니라 아무런 글도 쓰여 있지 않은 '백비(白碑)'가 있습니다. 이곳에 묻힌 이는 조선 중기 청백리로 이름난 박수량(1491~1554)의 묘지였습니다. 그는 예조참판, 형조판서, 호조판서 등 높은 관직들을 역임했습니다. 조정에 출사 한 시기가 38년이나 되고 재상에 이르는 직위에까지 올랐지만, 집 한 칸 마련하지 못할 정도로 청빈한 삶을 살았다고 합니다. '그가 죽었을 때 집에 돈이 없어 가족이 상여를 메고 고향도 가지 못하니 신하들이 임금께 청하여 겨우 장사를 치렀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