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에는 기도하게 하소서
낙엽들이 지는 때를 기다려
내게 주신 겸허한
모국어로 나를
채우소서
가을에는
사랑하게 하소서
오직 한 사람을 택하게 하소서
가장 아름다운 열매를 위하여
이 비옥한
시간을 가꾸게 하소서
*** 김현승
익어 가는 가을
꽃이 진 자리마다
열매가 익어 가네
시간이 흐를수록
우리도 익어가네
익어가는 날들은
행복하여라
말이 필요없는
고요한 기도
가을엔 너도 나도
익어서 사랑이 되네
*** 이해인
가을입니다
해질녘 먼 들 어스름이
내 눈 안에 들어섰습니다
윗녘 아랫녘 온 들녘이
모두 샛노랗게
눈물겹습니다
말로 글로 다 할수 없는
내 가슴속의
눈물겨운 인정과
사랑의 정감들을
당신은 아시는지요
해지는 풀섶에서 우는
풀벌레 울음소리 따라
길이 살아나고
먼 들 끝에서
살아나는 불빛을
찾았습니다
내가 가고 해가 가고
꽃이 피는 작은 흙길에서
저녁 이슬들이 내 발등을
적시는 이 아름다운 가을
서정을 당신께 드립니다
*** 김용택
가을사랑
당신을 사랑할때의
내마음은 가을햇살을
사랑할 때와 같습니다
당신을 사랑하였기 때문에
나의 마음은 바람부는
저녁 숲이었으나
이제 나는 은은한 억새하나로
있을 수 있습니다
당신을 사랑할때의 내마음은
눈부시지 않는 갈꽃 한송이를
편안히 바라볼때와 같습니다
당신을 사랑할 수 없었기 때문에
내가 끝없이 무너지는
어둠속에 있었지만
이제는 조용히 다시
만나게 될 아침을 생각하며
저물 수 있습니다
지금 당신을 사랑하는
내 마음은 가을 햇살을
사랑하는 잔잔한
넉넉함입니다
*** 도종환
가을엽서
한잎 두잎 나뭇잎이
낮은 곳으로 자꾸
내려 앉습니다
세상에 나누어 줄 것이
많다는 듯이 나도 그대에게
무엇을 좀 나눠주고 싶습니다
내가 가진게 너무
없다 할 지라도
그대여 가을 저녁 한 때
낙엽이 지거든 물어보십시오
사람은 왜 낮은 곳에
있는지를
*** 안도현
가을을 파는 꽃집
꽃집에서
가을을 팔고 있습니다
가을 연인 같은 갈대와
마른 나무가지
그리고 가을꽃들
가을이 다 모여 있습니다
하지만 가을 바람은
준비하지 못했습니다
거리에서 가슴으로
느껴보세요
사람들 속에서도
불어 오니까요
어느 사이에
그대 가슴에도 불고 있지 않나요
가을을 느끼고 싶은 사람들
가을을 함께 하고 싶은 사람들은
가을을 파는 꽃집으로
찾아오세요
가을을 팝니다
원하는 만큼 팔고 있습니다
고독은 덤으로 드리겠습니다
*** 용혜원
가을 아침
햇빛이 밝아
숲이 더욱 깊어졌다
내 사랑도 눈이 밝아
너에게로 가는 그리움
더욱 깊어 지기를!
아침잠 깨어
유리창 너머
멀리 보내본다
*** 나태주
가을엔 편지를 하겠어요
누구라도 그대가 되어 받아주세요
낙엽이 쌓이는 날 외로운 여자가 아름다워요
가을엔 편지를 하겠어요
누구라도 그대가 되어 받아주세요
낙엽이 흩어진날 모르는 여자가 아름다워요
가을엔 편지를 하겠어요
모든 것을 헤메인 마음 보내드려요
낙엽이 사라진날 헤메인 여자가 아름다워요
외로운 여자가 아름다워요
가을엔 편지를 하겠어요
*** **이동원의 "가을편지"
가을엽서
한잎 두잎 나뭇잎이
낮은 곳으로 자꾸
내려 앉습니다
세상에 나누어 줄 것이
많다는 듯이 나도 그대에게
무엇을 좀 나눠주고 싶습니다
내가 가진게 너무
없다 할 지라도
그대여 가을 저녁 한 때
낙엽이 지거든 물어보십시오
사람은 왜 낮은 곳에
있는지를
*** 안도현
일말의 계절
아무도 밟지 말라고 가을이 오고 있다
무엇이든 훔치려는 손을 내려 놓으라고 가을은 온다
힘 빠지는 고요를 두 손으로 받치듯
무겁게 무겁게 차오르는 가을
가을이 와서야 빨래를 한다
가을이 와서 부엌 불을 켜고 국수를 삶다가
움켜쥔 것들이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가도록 내버려둔다
먼 길에서 돌아와 듣는 오래 전에 남겨진 메시지
우편물이 반송되었으니 찾아가시기 바랍니다
마련할 것이 없으므로
생에 단 한 번 우체국을 찾아 보낸 것이 있다
계절이 오는 것도 다 받아내지 못하는 우체국으로 보낸 것이 되돌아왔다
되돌려 받기를 잘했다
괜히 알지도 못하는 이에게 생의 부분을 보냈다
파는 것인지 가져가라는 것인지
길 앞에 쌓아 놓은 가을 낙과를
하나쯤 가져가도 좋겠다
*** - 이병률